top of page

[Insight] 인구소멸시대, 컨벤션센터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 미래 세대를 위한 경험의 공간으로 활용해야 I

성남컨벤션센터(가칭) 조감도 (출처:성남시)

얼마 전 동아일보에 '1700억짜리 키즈카페된 컨벤션센터'란 기사가 실렸습니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짓고 있는 컨벤션센터가 매년 수십억씩 적자에 키즈카페화되고 있어 철저한 주민감시 시스템이 필요하단 내용이었습니다. (관련기사: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40322/124098657/1)


사실 컨벤션센터가 애물단지처럼 취급받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10년 전에 도시마다 컨벤션센터가 전문가들의 장밋빛 전망에 의해 건립, 증축되었지만 투자에 대한 수익은 제한적이고 대도시 시장들의 치적이나 과시용으로 전락하였다고 폭로한 'Convention Center Follies'란 책도 발간되었죠. 

Convention Center Follies (출처: Amazon.com)

그러나 한번 생각해 봅시다. 컨벤션센터는 왜 키즈카페가 되면 안 됩니까? 왜 회갑연 잔치를 하면 안 되는 겁니까? 컨벤션센터는 공공도서관으로서 기능을 하면 안 되는 것인가요? 컨벤션센터는 꼭 외국 바이어나 기업들이 참가하는 화려한 국제회의나 무역 전시회만 열려야 합니까? 


컨벤션센터의 본질은 무엇인가?

컨벤션센터는 본질적으로 '만남'의 장소입니다. 컨벤션의 어원인 'Convene'은 '모이다', '만나다'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컨벤션센터는 사람들이 서로 모여 교류하고 소통하는 만남의 공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컨벤션센터는 어떠한 만남의 공간입니까? 컨벤션센터는 기본적으로 미래와 조우하는 만남의 장입니다. 박물관이 과거를 경험하는 공간이고 쇼핑몰이 현재를 즐겁게 해 준다면, 컨벤션센터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전시회나 컨벤션을 통해 먼저 만나게 해주는 공간인 것입니다. 


이렇게 미래를 먼저 제시하는 공간이 컨벤션센터라면, 그 미래와의 만남이 제일 중요한 세대는 누구일까요? 당연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입니다. 미래를 먼저 경험하고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게 해주어야 할 역할을 컨벤션센터는 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인구소멸이 돌이킬 수 없는 현상으로 굳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 나타나는 특징이 바로 한 명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유아복 시장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출생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하나뿐인 아이에게 좋은 옷을 입히자는 흐름이 '뉴발란스 키즈' 같은 고급화 전략을 택한 비싼 브랜드가 잘 팔리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이런 흐름을 기업의 마케팅 전략일 뿐이라고 폄하할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가 차원에서도 한국은 한 명 한 명의 미래 세대를 그 누구보다 특별한 인재들로 키워야 하는 사명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인구 소멸의 시대, 컨벤션센터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금 전국에서 컨벤션센터 건립과 확장에 대한 붐이 일고 있습니다. 2030년까지 계획된 전시컨벤션센터 면적만 약 50만 sqm로, 축구장 70개를 합쳐놓은 면적과 비슷합니다. 기본적으로 컨벤션센터 면적이 확장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지속적으로 비즈니스 행사인 전시컨벤션이 늘어날 것이라는 가정하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전시컨벤션이 늘어난다는 것은 결국 국내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가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즉 컨벤션센터의 면적 증가는 국가의 경제 성장률과 비례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2023년 기준 약 1.4%이고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25년 만에 일본에도 밀릴 것이라는 예측이 있을 정도입니다. 인구 성장률은 말할 것도 없이 계속 감소하여 -0.2%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북한보다도 낮은 수치입니다. 경제와 인구가 지속적으로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는데, 컨벤션센터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아이러니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인 것입니다.


한국 연간 경제성장률 (출처: 세계은행)

한국 연간 인구 성장률 (출처: 세계은행)

한국 연간 컨벤션센터 면적 증가율 (출처: 한국전시산업진흥회)

그렇다면 지금 확장 또는 건립 중인 컨벤션센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센터당 수천억에서 많게는 조 단위까지 투입되는 컨벤션센터를 부실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부실 수 없다면 컨벤션센터의 기능을 다시 정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존재의 이유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것이죠. 


지금까지 컨벤션센터는 마이스 행사를 위한 핵심 시설로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렇기에 한국의 모든 컨벤션센터는 건물 구조도, 기능도, 심지어 사업 모델도 모두 비슷합니다. 행사 유치, 행사 기획, 시설 관리가 모든 컨벤션센터의 공통된 비즈니스 모델인 것이죠. 


컨벤션센터,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 시설로 거듭나야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저성장과 저출산 시대에 컨벤션센터는 마이스를 넘어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특화된 기반 시설로 거듭나야 합니다. 비단 마이스 행사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소통과 화합의 공간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경험의 공간으로 그 기능을 확장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주민들을 위한 아침 요가 공간으로도, 또 초등학생들의 국제 경험을 위한 수업 공간으로도 컨벤션센터는 활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새롭게 건축 중이거나 확장을 고민하는 컨벤션센터는 설계부터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그 기능에 대한 제안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성격은 다르지만 비슷한 공공시설인 핀란드 헬싱키의 공공도서관 오디(Oodi)는 헬싱키 시민들의 '새로운 거실'이라 불릴 정도로 지역 주민들의 휴식공간이자 놀이터이면서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열린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이 도서관은 약 20년에 걸쳐 지역 주민들의 아이디어를 설계에 반영하여 지역 커뮤니티의 핵심 기반 시설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헬싱키 공공도서관 오디(Oodi)


컨벤션센터가 마이스 산업에서 갖는 의미는 상당합니다. 바이어와 기업들을 도시로 불러들여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마중물로서 컨벤션센터는 매주 중요한 시설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컨벤션센터가 사업의 범위와 타깃을 비즈니스 이벤트로만 집중한다면 자칫 다시 한번 수익도, 성과도 창출하지 못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가동률이나 매출액 같은 양적 지표에만 의지하는 KPI는 결국 또 한 번 한국판 Convention Center Follies라는 날 선 지적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지금 오프라인의 공간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가 숙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 GE가 70년 가까이 임직원 대상 교육에 활용하던 사내 연수원 '크로톤빌'을 매각했습니다. 크로톤빌은 예전 잭웰치 회장이 후계자 양성을 위한 리더십 교육 장소로도 유명한 공간이었습니다. 이처럼 상징적인 공간을 매각하기로 한 것은 원격 교육이 확산되면서 사원들이 한 공간에 모여 교육을 받을 필요성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3M도 사내 콘퍼런스 센터인 '원워크'를 매각했고, 보잉이나 세일즈포스도 리더십센터를 매각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직원대상 투자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전달할 방법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뒤따랐죠. 


마이스 산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꼭 오프라인의 전시회나 컨벤션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정보 습득이나 판매를 할 기회는 많아졌습니다. 그렇다면 컨벤션센터가 지금처럼 1층은 거대한 전시장, 2-3층은 일자로 나열된 회의실의 전형적인 구조가 꼭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결국 가속화되는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은 컨벤션센터의 경영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성남 컨벤션센터는 단순한 마이스 시설을 넘어, 주민들을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기능이 필요합니다. 지역과 함께하는 컨벤션센터는 오히려 마이스를 지역 밀착형으로 만들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행사를 개최해도 지역 주민들이 관심도 없고, 방문자도 두세 시간 머물다 다른 도시로 떠난다면 그 도시는 마이스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헬싱키의 오디처럼 20년을 설계에만 투자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처럼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동아일보 기자가 제시한 '주민감시시스템'은 '주민참여시스템'으로 바뀌어야 옳습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동아일보 기자와 토론을 해봐도 좋겠습니다만,) 


이렇게 기존의 전형적인 컨벤션센터에서 새로운 개념으로 변화할 때는 여러 가지 잠재적인 문제점이 생길 수 있습니다.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변경할 때의 재정적 위험이나 사업 관리상의 복잡성, 또는 기존 마이스 주최자들의 반발 가능성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들은 충분히 대안적 제시가 가능합니다. 재정적 위험은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 적절한 자금을 파악하고 공공-민간 파트너십을 포함한 다양한 자금 조달 방안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기능에 대한 전문 팀을 조직하거나 직원 교육 등을 통해서 운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기존 주최자들과는 지속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그들의 요구와 기대를 반영한다면 오히려 지역과의 밀접한 관계 구축으로 이해관계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과정은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도 있겠지만 위와 같은 조건들을 충족시킨다면 컨벤션센터의 기능을 다양화하고 더 넓은 커뮤니티에 서비스를 제공하여 지속 가능한 성공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5-6년 뒤 치열한 수도권 컨벤션센터 간 경쟁에서 성남은 더 나은 컨벤션센터보다 완전히 다른 성격의 베뉴로서 포지셔닝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나음보다 다름'이 중요해지는 이 시대에, 성남이 새로운 컨벤션센터의 모델을 제시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이 글은 성남 마이스산업 발전 포럼을 위해 준비한 토론문입니다.

성남 마이스산업 발전 포럼에서 토론하는 모습 (출처: 성남시)

(C) VM Consulting


. Request for Contents? Contact david@vmconsulting.co.kr

bottom of page